조관우는 15억 빚더미에 올랐다는 일을 언급하며 "집 두 채가 다 경매에 넘어갔다.
집도 절도 없고 카드도 사용하지 못한다. 또 다 압류를 걸어놓은 상태라 주소지도 없고
떠돌이 생활을 하고 있다"고 운을 뗐다.
이어 "그렇지만 아이들에게 빚을 남기는 아버지가 되기는 싫다. 주변에서는
파산 신청을 하라는데 저는 그러고 싶지 않다. 벌 수 있다고 생각하고,
언제가 해결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금 빚이 15억 원이다.
파산신고하면 어느정도 회복할 수 있지 않을 까
안타까운 상황이다.
그간 조관우의 음악세계나 노래를
좋아하고 한때 인기도 많던 터라 아쉽다.
빨리 재기하길 기원한다.
빚 많은 연예인으로 이상민과 김구라가 떠올르지만
그들도 당당히 공개하고 해결하고 오히려 재기에 성공하는
모습을 보이니 빚투를 통해 다시 노래들을 수 있기를.
지금은 아저씨의 외모지만 젊었을 때는 항상 장발을 고수하고 선이 굵은 편이라
다소 느끼한 이미지를 갖고있어서
그런 것 같다. 얼굴 없는 가수 컨셉은 데뷔 초기 때만 그런 것이고 이후 음악 방송이나 콘서트를 활발하게 했다.
또한 유흥업소 출연을 하지 않고 MR을 사용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1965년 판소리의 대가인
조통달의 아들로 태어났다.
조통달의 집안은 예로부터 국악만을 해온 집안으로 조통달의 이모인 박초월 역시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있는 명창이다. 가계의 영향인지 조관우 역시도 어렸을 적부터 판소리, 창 그리고
가야금에 재주를 보여
국악예술고등학교에서 가야금을 전공한다. 하지만 조통달은 아들이 국악을
하는 것을 탐탁치 않게 여겼다. 그래서 국악을 하는 아들에게 크게 화를 내고 국악기에
손을 대지 못하게 하여 결국 국악은 접게 된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외국 음악을 접해 왔으며
국악을 그만둔 이후 완전히 미국 디스코/펑크 밴드들의 음악에 빠지게 된다.
특히 이 시기에 비지스와 같은 가성 창법을 이용하는 록밴드와
나 Earth Wind&Fire 등 가성을 사용하는 흑인 음악을 접하게 되었고
여기에 감명받은 조관우는 자신만의 가성 창법을 만들어내게 된다. 이것은 이후 조관우의 특징이 된다
사실 조관우의 데뷔가 1994년이 아닌 1992년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본명으로 낸 '조광호' 라는 앨범이 조관우의 첫 앨범이라는 썰. 곡은 '이제는 너를' 이라는 곡인데 조관우의 진성 목소리와 거의 일치한다. 2017년 여름에 네이버 측에서 이 앨범의 사진을 공개하기도 했다. 대놓고 조관우의 모습이며, 훗날 결혼하게 되는 장복신이 이 앨범에 작사가로 대부분의 곡을 써 주었다. 모노 앨범에 참여했던 조광호와는 동명이인조관우가 방송에서 얘기했던 에피소드인데, 학창시절 뭔가를 잘못했을 때 선생님이 "아버지는 통달했고 할머니는 초월했는데 넌 왜 이 모양이냐"고 하셨다고... 그리고 옆에 있던 달성이는 "넌 뭘 달성할 건데?" 하며 덩달아 머리를 맞았다는 우스갯소리이다.
[4] 중학교 때 조관우는 공부를 못해서 고등학교에 갈 수 있을지도 장담 못하는 상황이었는데 누군가 조관우에게 연극 대회에서 상을 타면 특례로 갈 수 있다고 해서 조관우는 연극부에 들었고 큰 상도 탔다. 그러나 당시에는 연기를 잘해서 갈 수 있는 고등학교가 한 군데도 없었고 조관우는 절망했는데 갑자기 아버지가 가야금을 가르쳐줘서 고등학교에 진학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국악고는 음악 분야에서도 서울, 선화예고와 함께 본좌급 학교다.일본의 유명 가수 토쿠나가 히데아키도 리메이크를 많이 하고 목소리도 비슷한 스타일이어서 조관우와 비교되는 일이 잦지만 실제로 토쿠나가는 팔세토 창법을 사용한 목소리가 아니라 그냥 음역대가 높고 가느다란 목소리로 노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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